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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속되지 못한 이의 비극적인 삶과 구원 <주정뱅이 천사 Drunken Angel>(1948)

cinephile 2021. 7. 8.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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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초기작 <주정뱅이 천사>에서는 그의 페르소나인 미후네 토시로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의 강렬한 이미지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역동성과 합을 이루며 프레임에 힘을 더한다. 초기작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깔끔하고 미장센과 연출방식이 완성형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구로사와 아키라가 패전 직후 일본에 살아가는 일반인들을 어떻게 그려냈는가'이다. 미후네 토시로는 폐허가 된 도시 속에 소속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어떤 삶으로 귀결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츠나가(미후네 토시로)는 출신이 불분명한, 패전 이후 홀로 부유하는 인물이다. 그는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이방인이다. 그가 소속된 곳은 야쿠자 집단이지만 그곳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마츠나가를 계속 안으로 끌어 당기는 인물로 사나다(시무라 다케시), 진(센고쿠 노리코), 미요(나카키타 치에코)가 있다. 사나다는 마츠나가가 결핵을 이겨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돕는 구원자다.

 

마츠나가에게는 병원의 문이 항상 열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임시 거처를 전전하는 마츠나가에게 사나다가 있는 병원은 언제나 환영받을 수 있는, 즉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병이 악화된 그에게 찾아온 것은 병약함으로 인한 악몽이었다. 나무에 기댄 마츠나가의 모습은 매우 불안정해보인다. 그의 앞에 놓인 연못은 계속해서 인서트로 삽입되며 폐허가 된 도시와 마츠나가의 혼탁한 정체성을 상기시킨다. 관 속에 누워있는 자신이 쫓아오는 악몽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악몽으로 불안에 시달린 그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여전히 자신이 있어야할 곳은 조직이라고 생각하며 오카다에게로 돌아간다. 붙잡으려는 미요와 도망치려는 마츠나가 사이의 문은 구원과 외면을 상징한다. 마츠나가의 새로운 삶을 위해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미요를 마츠나가는 문을 닫는 것으로 거부한다. 결국 그는 오카다에게로 돌아가지만 배신을 당하고 거리를 배회하게 된다. 이때의 꽃집 장면은 꿈 장면과 함께 죽음을 상징한다.

 

마지막 시퀀스의 거울은 오카다를 죽이기로 결심한 마츠나가의 자아가 마치 분열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미 병약해진 몸으로 오카다를 이길 수는 없었다. 오카다에 의해 구석으로 몰린 마츠나가. 아이러니하게도 구석으로 들어갈수록 그를 향한 중심 조명은 더욱 강해진다. 사실 마츠나가에게 다가가는 죽음은 결핵에 걸린 그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

 

 

오카다에게 찔린 그는 문을 열어젖히고 쓰러진다. 이 문은 천국으로 향하는 문, 즉 마츠나가가 거부하려고 시도했던 구원의 문이 된다. 고결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흰색의 페인트로 범벅된 그의 모습은 천사 같다. 빨간 피는 흰색에 가려져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은 이의 모습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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