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리 감독의 <도희야>에서 도희가 춤을 추듯, <다음 소희>에서는 소희(김시은)가 춤을 춘다. 도희와 소희에게 춤은 유일한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듯하며 이 춤으로 만난 인연은 그들을 살아가게 한다.
소희는 누고보다 씩씩하다. 그리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하지만 콜센터 면접을 위해 신어 본 구두가 춤을 방해하듯, 맞지 않는 사회에 억지로 적응하려 한 소희는 연속된 부당한 일에 잠식되어 간다. 잘못하지 않은 일에 처음 사과를 하게 된 소희는 벽을 마주한다.
소희는 더 이상 춤을 추지 않는다. 점차 웃음을 잃어 가는 소희는 팀장의 자살 이후, 으례 그의 성격 처럼 유일하게 장례식에 참석하고 비밀 유지 각서를 가장 늦게 제출하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점차 균열이 생기게 되었지만 부모님도, 선생님도 실망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소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자신의 논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는 논리를 벗어난 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결국 압박에 못 이겨 각서를 쓰게 된 소희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춘다. 근무를 하면서도 친구에게 연락하는 능수능란한 소희의 모습은 아들을 잃은 고객의 서비스 해지 요청을 계속 방어하는 장면에서 심화된다.
그렇게 비도덕한 사회에 물들려고 할 때, 소희는 또 한번 부당함에 마주한다. 열심히 일해도 인센티브를 정당하게 받지 못하는 것은 소희를 내부인도 외부인도 아니게 만든다. 어떤 방식으로든 적응하려 한 소희는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새 팀장의 "하기 싫으면 하지 말든가"라는 절망적인 말, 선생님의 "믿는다"는 숨막히는 말,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못 들은 척하는 부모님의 가증스러운 모습 속에서 소희는 탈출할 구멍이 없다.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 외로운 아이는 끝내 죽음에 이른다.
유일하게 숨 쉴 구멍이었던 춤 연습실을 나와 마주한 눈은 소희의 마음을 잠시금 적셨지만, 곧 그 눈은 소희의 피를 더 두드러지게 한다. 병원을 나서는 길에 몰아친 눈은 공격적이 되고 마지막 길에 내리는 눈은 다시 아름답게 흩날린다.
영화는 다른 아이들의 상황도 함께 비추고 있다. 쭈니처럼 끊어내지 못하면 소희가 되지만, 빨리 끊어내더라도 쭈니가 된다. 모두가 책임을 전가하고 외면하는 사회적 구조는 금방 '다음 소희'를 만들어낼 것이다.
2부에 나오는 유진(배두나)은 어디서 왔는가?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건 유진은 어머니와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어머니로 대치되는 유진이 겪은 '어른'은 소희의 '어른'과 비슷할 것이다.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 <영향 아래 있는 남자>, <11>에서 인물들을 추동하는 장치가 트라우마였 듯, 유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가 소희와 동일하게 겪은 트라우마에 있다.
유진은 콜센터를 방문하면서 의문점을 발견한다. 실적이 1등인데 왜 징계가 내려졌는가? 소희의 자리를 보면 굉장히 열심히 일한 흔적이 보이는데, 왜 죽음을 선택했는가? 라는 의문은 수사를 더 이어가게 한다.
유진이 춤 연습실에 들렸을 때 걸그룹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춤을 추는 장면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아이들과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아이들이 대비되면서 새 팀장의 "하기 싫으면 하지 말든가"라는 말을 다시금 상기시키게 한다. 그렇게 단순한 말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유진의 여정은 소희의 여정과 닮아있다. 번번이 유진을 좌절시키는 선배, 팀장, 교장, 교육청 직원들은 소희가 느낀 무기력함과 동일하다.
마지막으로 태준을 만난 유진. 태준은 자신이 징계 받은 이유를 '욱'했기 때문이라고 표현한다. 유진은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다.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는 아이들에게 참지 못하고 '욱한다'는 프레임을 씌우며 그들의 잘못으로 치부하게 하는 사회, 그리고 그런 곳에서 버티지 못하면 "하기 싫으면 하지 말든가"라는 쉬운 한 마디로 사람을 끊임없이 좌절시키는 어른. 소희와 아이들이 겪은 건 화낼만한 이유였음에도, 어른들은 '어른스러움'이라는 방패로 아이들을 질타한다.
수미상관으로 끝나는 구조에서 유진은 소희가 추는 춤을 지긋이 바라본다.
춤을 추는 소희는 이제야 누구보다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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